자유와 여유
타지생활/호주 멜번 2009. 5. 10. 19:57-전에는 여유와 자유가 같다고, 비슷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대부분 여유로워지면 자유로워질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게 전혀 다른거라는 걸 얼마 전 느꼈어요. 여유로워도 자유롭지 않을 수 있고 여유와 자유는 별개라고. 내가 자유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대부분은 여유더라고요. 다들 돈 열심히 버는 것도, 글 잘 쓰고 싶었던 것도, 여유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자유는 좀 더 어려운 거라고 생각해요. 자유에 어떻게 다다를지...방법이요? 물론 모르죠. 왜 사는지도 모르는데...
- 씨네 21, 김혜리가 만난 사람 박민규와의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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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 주말, 사진전을 축하하러 내려갔었던 레오의 맘스베리's merchant...... 늘 나랑(?) 우리는 대체 언제 은퇴하는 거냐고 울화성인 레오는 올해 생일, 육십살이 된다.
그는 사진을 찍는다. 십대때부터 쉬지 않는 즐거운 마음으로 오랫동안 찍어왔을 뿐 아니라, 개인전도 경험도 많고, 권위있는 영국 뭐뭐 사진 잡지에 몇장의 지면을 장식한 적도 몇번이나 있고 값비싼 장비와 전문가용 프린터도 집에 구비하고 있고...... 무튼 레오는 사진을 찍는다.(?)
일주일 장사가 끝나는 일요일. 까페가 문을 닫을 즈음, 동네 친구들이 하프니 키타를 들구 슬렁 슬렁 모인다. 갓난아이를 포데기에 내려놓은 엄마는 노래를 부르며 아프리칸 드럼을 치고 아빠는 하프를 켠다.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지나가다 들린 동네청년은 우클레라를 치며 웃고 떠들고... 여섯시가 되면 까페를 닫고 갤러리로 달려가 전시 오프닝을 해야 하는 처지임에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농을 주고 받는 데 빠지지 않는 레오...
'평천하는 남들이 할테니 난 신선할란다'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함께 내려간 친구는 요즘 생존의 기술을 '잠시' 연마해보겠다! 며 하루에 열서너시간이 보통인 과격한 수준의 노동을 참아내고 있는데 요 몇달 나를 건너 레오 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흔들흔들한다.
전투하듯, 부러 건조하게, 눈과 귀를 막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의 일상에 촉촉한 뭔가가 똑 똑 떨어졌겠지.
천만가지 감상이 뒤섞인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거 참 아름답게 산다.
아이고 나는 당장도 이렇게 살 수 있는데......!
한다.
아 '당장' 누구는 못하니. 당연한 소리라 생각되어 피식 웃었더니
좀처럼 흥분 안 못하는 이 친구가 모처럼 꼿꼿하게 여유랑 자유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한다.
진짜 꼿꼿하게.
그래, 네 말이 맞아.
행복하게 돈을 버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하다가
시스템 속의 전문가가 되기 싫어하는 나의 짓궂음을 한탄하다가
정말 필요한만큼의 적은 돈을 벌며 땅과 가까이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을 생각하다가
그렇지 가능하지 그거다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러다
내 마음 어딘가에
그래도 이것저것을 이루어보고
(삼 초만 지나면 사라질) 큰소리도 한번 쳐보고 싶게 사회화된 어쩔 수 없는 목소리를 듣고
나의 시시함을 속됨을 경멸해보고
얼른 정신을 가다듬는 나도, 나임을 기억한다.
그래 돈이 있으면 누구나 갖을 수 있는 자유가 아니지.
고개를 끄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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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 이야기.
모기지 갚으려고 평생 일하다 가겠구나.
팔년전 어느날 아침, 눈을 뜬 레오는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픽 디자인을 하며 멜번 시내 '괜찮은' 동네에, 주택부금을 부으며 십년을 넘게 살아온 레오는 그날 이후 주말마다 한적하고 맑은 공기도 있지만 또 '재밌는 문화와 커뮤니티'도 있는 교외 도시를 찾으러 다녔다. 그러길 일년,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버려져 있는 빅토리아주의 천연자연물인 블루스톤으로 지어진 이 오래된 이층집을 발견한 그는, 몇십년을 모아온 벽을 꽉 메운 음악씨디와 책들, 베이스기타와 엠프, 수십개의 항공모형기, 그리고 이가 빠진 접시들과 나무 식탁을 둘러매고 이곳으로 내려왔다.
사일, 삼일, 이틀... 점점 줄이던 일은 맘스베리에 온 지 삼년만에 완전히 그만 두었다. 그리고 살던 집 일층을 조금씩 개조해 작은 까페를 열었다. 까페는 일주일에 목금토일 사흘만 연다.
까페에는 많은 이야기와 소식이 머물다 지나가고
새로운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까페에 모이고
또 사람들은, 장식용 미소와 진심없이 오고가는 안부인사 small talk 뒤에 감춰진, 감추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되어버린 슬픔들을 레오에게 종종 털어놓기도 한다.
레오는 서비스업계에서 일해 본 적이 없어 효율적으로 일하는 법을 모르는 자신에게 자기에게 까페 일은 정말로 쉽지가 않고, (레오는 작은 쿠키, 머핀부터 야채스프에 이르는 간단한 음식까지 직접 요리를 장만한다.)
무엇보다 이 일은 퍽 강도가 높은 고된 육체노동이라고 말한다.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신중함과 사려깊은, 느려도 괜찮은 목수같은 장인의 일로의 귀향이 아니고, 빠릿빠릿 몸을 써야 하는 호스피탈리티 직업군에서 새롭게 시작하기에 그래, 그의 몸은 노쇠했다.
그러나 전문가였던 그래픽 디자인 일을 할때는 항상 분리되어 있던 자신의 '삶'과 '일'이 이제는 하나로 느껴지는 것이 너무 소중하다고 언젠가 그가 고백했을때 나는 가슴저리게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또 언젠가 다시 태어나거나 존재계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을 택하겠냐는 나의 질문에 "둘 다 관계없어. 하지만 무엇이 되는가를 결정할 수 있다면 Bodhisattva같은 사람이 되어 사람들을 위로하며, 등을 쓸어주며 살고 싶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는 천사처럼."
라고 말하며 천사같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
서로의 눈과 눈을 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 허공에 공허한 시선을 던지며 아슬아슬한 걸음을 걷고 있는 사람들 가슴 속의 그 차가운 보호기제를 네가 How are you? 한마디로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종종 봐. 너 그렇게 살고 있는 거 같아.
나의 말에 그는 부끄러워하며, 그러나 매우 기뻐하는, 빛나는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정말로 바빴던 하루장사가 끝나 까페를 닫고, 동네 근처 해지는 강둑에 별말없이 앉아 지친 몸을 달래는 맥주와 칩스앤피쉬를 함께 먹던 저녁이었다.
그는 또 언젠가 다시 태어나거나 존재계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을 택하겠냐는 나의 질문에 "둘 다 관계없어. 하지만 무엇이 되는가를 결정할 수 있다면 Bodhisattva같은 사람이 되어 사람들을 위로하며, 등을 쓸어주며 살고 싶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는 천사처럼."
라고 말하며 천사같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
서로의 눈과 눈을 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 허공에 공허한 시선을 던지며 아슬아슬한 걸음을 걷고 있는 사람들 가슴 속의 그 차가운 보호기제를 네가 How are you? 한마디로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종종 봐. 너 그렇게 살고 있는 거 같아.
나의 말에 그는 부끄러워하며, 그러나 매우 기뻐하는, 빛나는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정말로 바빴던 하루장사가 끝나 까페를 닫고, 동네 근처 해지는 강둑에 별말없이 앉아 지친 몸을 달래는 맥주와 칩스앤피쉬를 함께 먹던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