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 많은 조윤석
자전거에서 내려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돌아와서는 검색창에 무작정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쓰고 검색버튼을 눌렀다.
참 좋아해도 사람이 워낙 주도면밀하지가 않아서 자세한 신변잡기같은 건 모른다. 자신은 사람의 심장을 고치는 걸 공부하는데, 지금 하고 있는 공부보다 실은 '음악'이 더 좋은 약 이라고 생각한다 고 말한 것을 어디서 주워듣고 오래도록 기억했고 또 언젠가 신문기사에서 한복을 입고 논문심사를 받는 사진을 보고 그저 어렴풋이 잘 살고 있구나 생각했었는데, 벌써 몇년 전의 기사...
이런 이유로 유학을 갔었구나.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
t: <버스, 정류장>은 반응도 좋았고, 평가도 좋았는데. 1년이 안되어서 갑자기 유학을 떠난 게 뜻밖이었다.
루시드 폴: 그 때 이야기가 많다. <버스, 정류장> 음반을 맡았을 때는 패배의식도 느꼈고, 절망을 많이 했다. 그 음반이 한 달에 만 장이 나갔다. 그런데 루시드 폴 1집은 1년 동안 만 장도 안 나간 상태라서. 그때 이런 상황에서 내가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회의가 들었다. 음악을 할 수 있나, 해도 되나,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침 그 즈음에 라디오 뮤직과도 갈등이 생겼는데, 이게 심해져서 법적 문제로까지 비화된 상황이었다. 졸업도 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안정적인 상태가 되고 싶었다. 장래에 대한 고민과 겹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우연히 스웨덴 대학 홈페이지에서 한국어로 된 박사 과정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t: 한국어 광고가 있었나?
루시드 폴: 거기에서 박사 과정에 있는 한국 사람이 낸 광고였다. 적당한 사람을 못구해서 그 광고가 1년째 걸려 있던 상황이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내용을 보니 학비는 무료에 월 생활비와 숙식처까지 제공한다고 적혀있어서 바로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내 학부 학점을 물었다. 2.7이라고 했더니, 대체 왜 공부를 하고 싶냐고 하더라. 공부가 절박하냐고 묻길래 솔직하게 말했다. 원래는 음악 하는 사람인데 이러저러해서 거기로 가고 싶다고 했더니 담당교수가 못믿겠으니 일단 6개월짜리 임시 비자를 발급받고 와서 하는 걸 봐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당장 가서 6개월 동안 100페이지가 넘는 논문을 두 개 쓰고, 그 사이 소논문을 다 합해서 십여 편을 썼다. 아무 생각 안하고 공부만 했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받아주더라.
t: 박사 과정은 언제 끝나나. 그땐 또 선택의 고민이 있을텐데.
루시드 폴:
내년 5월에 끝난다. 그때는 분명히 고민이 될 것 같다. 그런데 계속 공부를 할 것인지 아닌지는 아닐 것 같다. 지금 하고
있는건 공부가 아니라 일이다.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내는 일이니까. 어쨌든 시작은 했으니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를 지을 거다.
사실그 다음에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것 같기도 하다. 이 쪽 일을 하기 전에 나는 공학에 대한 환상 같은 것도 있었는데, 한
5년정도 하면서 그런 게 없어졌으니까. 완전히 그만두고 전혀 다른 생업을 찾아 갈 수도 있다. 내게 음악은 업이지만, 먹고 사는
건다른 일이다.
t: 그건 전업 음악가에 대한 일종의 공포가 있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루시드 폴:
있다. 심정적으로 나는 항상 전업 뮤지션이지만, 음악으로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다. 개인적으로 집에 워낙 굴곡이많아서,
너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내게는 그런 공포가 있다. 배고픈 게 싫다. 추운 것도 못 참고. 그래서 월급을 받을 수 있는데에서
일하고 싶었다. 100만원도 좋고, 150만원도 좋으니까. 가족들 생활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다.다른
사람들처럼 용감하게 뛰쳐나가서 하고 싶은 걸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유학도 월급 주겠다는 이유 때문에 선택한 일이었고,지금도 돈
주니까 하는 거다. 돈 안주면 내가 공부를 왜 하는가. 안 할 거다. 대신,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구는 정말 없다.배만 안
고팠으면 좋겠다. 이런 말에 대해서 내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나는 그렇다. 그건 다 인정한다.그게
나니까. 그러면서 결혼까지? 말이 안되는 거다. 그런데 웃긴 건, 이제 나이를 좀 먹으니까 오히려 처음보다는 조금 더용감해지는
것 같다. 더 겁을 내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못 먹고 살까라는 생각도 든다. (웃음) 이런 고민이 내가 선택해야할시기와 맞물리면
좀 더 폭 넓게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어떻게 할 지, 아직 결정을 못 내렸다.
-매거진 t 인터뷰 부분 중
-인터뷰의 전문